우리는 오랫동안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어왔습니다. 키, 지능, 성격, 그리고 암이나 당뇨 같은 질병까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DNA라는 설계도에 이미 새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유전자는 바꿀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 연구는 이 믿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쌍둥이가 왜 한 명은 건강하게 장수하고, 다른 한 명은 암에 걸려 일찍 사망하는 걸까요? 21세기에 등장한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유전자가 하드웨어라면, 후성유전학은 그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학문입니다. 즉, 타고난 유전자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발현) 끄는(억제) 것은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혁명적인 발견입니다.
후성유전학의 핵심 메커니즘은 메틸화(Methylation)입니다. DNA의 특정 부위에 메틸기라는 화학 물질이 달라붙으면 유전자 스위치가 꺼지고, 떨어지면 켜집니다. 예를 들어,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에 메틸기가 덕지덕지 붙어서 스위치가 꺼지면 암세포가 증식하게 됩니다. 반대로 비만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메틸화 조절을 통해 그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날씬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스위치를 조절할까요? 바로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수면의 질, 운동, 그리고 스트레스가 화학적 신호가 되어 유전자에 영향을 줍니다. 정크푸드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는 생활은 나쁜 유전자를 깨우는 신호탄이 되고, 건강한 식단과 명상은 좋은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스위치가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후천적인 변화가 자식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네덜란드 기근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더니, 영양실조를 겪은 임산부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만과 당뇨병 발병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부모가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기아의 경험이 태아의 유전자 스위치에 절약 형질(먹는 족족 지방으로 저장하려는 성질)을 켜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세대 간 후성유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거운 책임감을 주는 동시에 엄청난 희망을 줍니다. 내 건강은 조상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유전자의 피해자가 아니라, 내 유전자를 경영하는 CEO입니다. 오늘 당신이 먹은 샐러드 한 접시가, 당신이 참아낸 담배 한 개비가 당신의 유전자 지도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당신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