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긴장하면 배가 아픈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았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발표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고,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단순히 성격이 예민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최근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 이론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뇌와 장이 미주 신경으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뇌가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면역 세포의 70% 이상도 장에 모여 있습니다. 즉, 장은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하는 파이프가 아니라, 우리의 기분과 면역력을 좌우하는 제2의 뇌입니다. 제가 늘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찼던 시기에 유독 짜증이 늘고 무기력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최근 의학계의 화두인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장 속에 사는 미생물 생태계를 뜻합니다. 건강한 장은 유익균과 유해균이 85:15 정도의 황금 비율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잦은 회식과 인스턴트 위주의 식사, 그리고 감기에 걸릴 때마다 먹었던 항생제로 인해 장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상태, 즉 디스바이오시스 상태였습니다. 항생제는 나쁜 균만 죽이는 게 아니라 아군인 유익균까지 몰살시키는 핵폭탄과 같아서, 한 번 먹으면 장 환경이 복구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무너진 장 건강을 되살리기 위해 4R 프로그램을 실천했습니다. 첫 번째는 제거(Remove)입니다. 장내 유해균이 좋아하는 먹이인 설탕, 밀가루, 술을 최대한 줄였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과자를 무심코 집어 먹던 습관부터 고쳤습니다.
두 번째는 재심기(Reinoculate)입니다. 좋은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프리바이오틱스)를 충분히 섭취했습니다. 김치, 된장 같은 발효 식품은 물론이고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매끼 식탁에 올렸습니다. 특히 아침 공복에 따뜻한 물 한 잔과 유산균을 먹는 루틴은 장을 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재생(Repair)입니다. 장 점막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아연과 글루타민이 풍부한 음식을 챙겨 먹었습니다. 장이 편안해지니 신기하게도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듯 맑아지고,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성격도 많이 유해졌습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곧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만듭니다.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져 잔병치레가 잦다면, 뇌를 탓하기 전에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장을 들여다보세요. 장내 미생물이라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야말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입니다.